김포대두 정왕룡의 독후감 -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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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대두 정왕룡의 독후감 -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읽고
  • 김포부동산신문
  • 승인 2020.01.1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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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읽고 나는 마키아벨리에게 '인간'이라는 말을 붙여줬다.
사진 : naver blog 김포대두 정왕룡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친구 마키아벨리’를 다 읽고난 후 작가는 ‘나의 친구’라는 제목을 달아주었는데...나는 무어라 부를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상가? 작가? 철학가? 행정관료? 정치가?
그러면서 ‘인간’이란 말을 붙여줬다.

‘마키아벨리즘’이란 단어로 학창시절 그의 이름을 교과서에서 접한 후 그는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멀고 먼 존재였다. ‘정치가나 정치활동 영역에서 권모술수등 비도덕적 행위는 그 나름의 의미를 갖기에 윤리적 잣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라는 정도의 의미로 마키아벨리즘은 내 기억속에 자리잡았던 것 같다.

그런데 정치, 그중에서도 지방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지 10년이 넘으면서 이제는 나에게도 ‘당신의 정치철학, 혹은 정치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는 분노와 열정, 그리고 추상적 정의감으로 여기까지 나 자신을 밀고왔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정치말고는 잘 할 수 있는게 없다보니, 이것 말고는 밥벌어먹고 살 수단이 없다보니 정의실현이라는 포장지로 나를 합리화하면서 여기까지 달려오지 않았나’라는 고백을 하게된다.

마키아벨리는 여러면에서 나와 공통되는 부분이 많은것 같다.
허약한 집안배경, 항상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제환경, 스팩의 빈약함, 자기업무 충실함, 문서작성, 기록에 능숙함...권모술수나 요령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

더구나 메디치가가 피렌체에 복귀하면서 정치적, 행정적으로 고립되고 실직자가 되어 빈곤에 시달리는 모습, 그리고 그 상황에서 여기저기 일자리를 부탁하며 어떻게든지 방안을 마련해보려는 모습은 현재의 내 상황과 겹쳐지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젖게한다. 그 상황에서도 지인들을 통해 정책을 제안하고 젊은이들과 정치학습의 장을 만들고 다방면의 문예창작활동을 하는 모습은 영원한 낭만주의자로 그를 비쳐준다.

결국 그는 생애말년에 피렌체 공직선거에 입후보했다가 압도적 반대로 낙선의 고배를 마신후 그 충격으로 얼마후 세상을 뜨게된다. 그가 그렇게 염려하고 고민하였던 도시국가 피렌체도 얼마안가 자기의 운명을 다하게 되고 르네상스 시대도 종언을 고하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는 말미에 묻는다. 이 책을 다 읽은 다음 당신도 마키아벨리를 작가처럼 친구로 부를 수 있냐고.

나는 그를 친구로 부를수가 없다.
아직 제대로 모를뿐더러 전기작가의 입장에서 편하게 ‘친구’로 대상화할 수 있는 입장과 현재의 나의 처지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묻는다면 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사람’으로 그를 부르고 싶다.
진정성을 갖고 대하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낭만적 태도가 그의 생애를 불행하게 만든것은 아닌지..그래서 그의 낭만적 인간관, 그리고 피렌체를 향한 순수한 근심과 열정, 르네상스 막차에 올라타 혼란을 목도하며 숨을 거둔 그의 생애가 안타깝기만 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란 영역은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현대에 와서도 우리에게 그리 밝은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것이 여전히 마키아벨리가 정치영역을 뛰어넘어 일상 생활에서도 우리곁에 강하게 남아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다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를 어떻게 부르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은 정치적 음모와 권모술수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이런 점에서 인간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 입문서로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김포대두 정왕룡)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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